우리 사회는 지식인에 떠나지만 지성인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고대나 근현대의 철학사에서도 지성인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여러 담론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한반도에서는 1910년 일본 식민 지배에 이어1945년의 신탁 통치, 1950년 한국 전쟁과 권위주의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이런 지식인과 지성인,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담론 과정은 거의 없고 몇몇 학자에 한정된 수준에 그쳤다.
최근 윤 석열은 의대 정원을 2,000명의 범위 내에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4년 전에 문재인 정권에서 400명 증원 정책을 밝혔다 당시 의사와 의대생의 집단 반발,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처럼 보도한 조중동 등으로 해당 정책은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다.문재인 정권 당시 400명의 정원 확대에 대한 의사와 의대생들의 방대한 집단 반발이 일어난 반면 윤 석열 정권이 5배나 많은 2,000명의 정원 확대(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확대)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의대생들의 두드러진 반발이 없는 모습으로 필자는 아이러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한국의 고령화 때문에 의사의 수요는 날로 높아지면서(의료 관계자)증원은 필요하다.의료 산업의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과 바이오 헬스 케어 분야를 키우기 위해서도, 의학부 정원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신년 대담 석영 기쁩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지식인은 억압하는 자의 측에 설 수밖에 없다”와 지식인을 설명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엘리트인 지식인을 대표하는 법조인이나 의료인은 억압하는 쪽에 나서기보다 억압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보조를 맞추거나 스스로 억압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지식인의 상실 시대가 아닌가 싶다.최근 윤 석열 정권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고 서울 아산 병원 전공의(인턴)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고 문재인 정권 당시와 비슷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듯했지만 결국 하루 만에 전원 복직했다.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문재인 정권 당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고 대다수의 전공의(2020년 의대 정원 추진 당시 전체 전공의 약 80%가 집단 휴진에 참가, 전국 1만 여명의 전공의 중 88.2%가 의대 정원 증원 시 단체 행동에 참여)이 집단 사표를 제출한 반면 윤 석열 정부에서 같은 정책에 대해서는 고작 5명 미만의 전공의가 사표를 제출하 전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지식인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지식인을 설명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소위 엘리트이자 지식인을 대표하는 법조인이나 의료인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억압하는 자의 눈치를 보고 보조를 맞추거나 스스로 억압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지식인의 상실시대가 아닌가 싶다.최근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해 서울아산병원 전공의(인턴)들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해 문재인 정부 당시와 비슷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듯했으나 결국 하루 만에 모두 복직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대다수 전공의(2020년 의대 정원 추진 당시 전체 전공의의 약 80%가 집단휴진에 참여, 전국 1만여 전공의 중 88.2%가 의대 정원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가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반면 윤석열 정부의 같은 정책에 대해서는 고작 5명 미만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혀 상반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플라톤과 현대 아인슈타인은 지식인에 대해서 특권이 아닌 의무를 주문했다.플라톤은 “정치에서 눈을 돌리는 최대의 대가는 가장 저질 인간에 지배된다는 것이다”라며 정치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부정이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인 국가가 사람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사람은 국가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로서 지식인의 비리에 적극 나서고 저항할 것을 주문했다.대철학자 니체는 “나 다움(becomingoneself나 다운 존재가 되기)”에 대해서”당신의 존재가 될 거야(become what you are)”라고 주문하고 진실을 옹호하는 전사(warrior)으로 진실을 대중화하는 시인(poet)이 되길 열망했다.니체는 이를 “진실에 대한 의지”(Will to Truth)혹은”머리의 정직”(intellectual integrity)라고 불렀다.또 진실 여부에 비추어 자신의 한계, 편견, 이해 관계를 넘는 용기가 없으면, 자아(나 다운 존재)가 될 수는 없고 진실에 대한 용기가 바로 자아가 먹고 자란 양식이라고 말했다.또 1920년대 말, 지식인의 배신을 공식적으로 다룬 프랑스의 철학자 줄리안·밴더(Julien Benda)는 “먹물이 무엇의 주체, 무슨 싹이 없는 존재가 되자 유럽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며 당시 유럽을 평가했다.어떻게 보고 반다의 이런 비판은 1920년대만 아니라 2024년 대한민국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반다는 “지성인의 배신:The Betrayal of the Intellectuals”이란 책에서 지식인이라는 가치의 보편성과 엄밀한 부동의 이성적 이유에서 절대적이고 영원 불변의 진실과 이상을 추구하는 “성직자(clercs)” 같은 인생을 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이 국가 주의와 민족주의, 진보와 보수 등의 이념과 진영의 합리적 이성을 포기하고 현실과 야합하는 배신자의 길을 선택한 비판한다.지식인들의 이런 잘못된 선택에 의해서, 대중은 분열되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분열과 갈등의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게 된 “이라며 지식인들의 배신이 사회에 가져온 각종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했다.반다가 내린 지식인의 정의는 한마디로 “자신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금전이나 사회적 특권 등의 현실적 목적 추구에 없는 자들과 규정하고 지식인들이 이러한 정의에 반하는 선택을 할 경우 사회의 붕괴를 위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지식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밴더만이 아니었다.그에 이어경영학을 체계화한 사회 사상가 드러커(P. Drucker)역시 진실 옹호의 용기와 진실 대중화의 열정이 없는 먹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그들이 공동체를 해체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는 것이 드러커의 주장이었다.그럼 진정한 지식인, 또 지성인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지성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를 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1926년~37년 무솔리니에 의해서 투옥된 이탈리아의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행동 주의자, 언론인이자 뛰어난 정치 철학자인 안토니오·그람시(Gramsci), 그는 그의 “옥중 고생:Prisin Notebook”을 빌려서”모든 사람이 지성인이며 그 때문에 누구나 지성인이다.다만 모든 사람이 사회 속에서 지성인의 기능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로 지성인이 고도의 지식에 그치는 것은 아니며 이를 넘어 사회 속에서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지식인에 대한 날선 비판은 반다뿐만이 아니었다. 그에 이어 경영학을 체계화한 사회사상가 드러커(P. Drucker) 역시 진실 옹호의 용기와 진실 대중화의 열정이 없는 먹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공동체를 해체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이라는 게 드러커의 주장이었다.그럼 진정한 지식인, 심지어 지성인은 어떻게 있어야 할까?위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성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1926년~37년간 무솔리니에 의해 투옥된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행동주의자, 언론인 겸 뛰어난 정치철학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Gramsci), 그는 그의 ‘옥중고생: Prisin Notebook’을 빌려 ‘모든 사람이 지성인이고, 그것 때문에 누구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사회 속에서 지성인의 기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지성인이 고도의 지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사회 속에서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한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가 히틀러의 제1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물론 히틀러가 침공을 개시한 국가는 프랑스에서는 못했지만 당시 유럽에서 독일의 군사력에 버금가는 국가로서 프랑스가 꼽혔기 때문에 결국 독일이 유럽 전역을 지배하에 두려면 반드시 프랑스를 점령해야 했다.결국 프랑스는 독일의 전차를 앞세운 속도전에 속수무책으로 차지했다.그러나 독일에 점령된 몇년의 시간을 마친 프랑스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1944년 8월 프랑스가 나치·독일에서 풀려난 뒤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과거 청산”이었다.그 후 2년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부역자”들은 샤를·도·골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1만명을 헤아린다.그러나 일부 우파 언론은 10만명, 역사학자 중에는 4만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프랑스 법원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매년 전국적으로 1만 6000~1만 8000건의 형사 사건을 처리했다.그러나 전후의 재판관 수가 줄었음에도, 1년 4개월 간에 처리한 “부역 사건”뿐 11만 8000건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강력한 태도를 보였는지 짐작이 간다.”이제 역사가 바로잡히지”이런 과거 청산에 적극 나선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불행히도 반역자에 대한 청산 못 했다.그리고 그런 청산을 가로막던 사람이 바로”건국 전쟁”의 주인공인 이·승만이었다.나치 점령기에 프랑스 지식인들의 저항 운동을 가장 활발히 전개된 “프랑스 문예”는 나치의 부역자에 대한 관용과 용서를 하나의 죄와 동일시하고 처벌을 단호히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과거의 우리의 불행은 모두 반역자를 처벌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오늘 그들을 다시 처벌하지 못하면 큰 불행이 올것이다.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즉 내일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다”이는 과거의 역사적 범죄가 미래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정리하고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은 추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오늘의 대한민국은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뉴 라이트가 활동하고 있어 이런 뉴 라이트는 정부와 협력해서 역사 왜곡과 친일 행위를 하고 있다.이것이야말로 이런”프랑스 문예”의 경고가 말과 글이 아닌 현실임을 밝힌 단편이다.